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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폐허를 응시하며 나아가기

윤란

  지금 전 세계는 유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앓고 있다. 2019년 발발된 코로나 19는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을 이끌었고 이후 우리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해야만 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인간이 영위했던 삶의 방식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었으며, 각 분야의 학계와 기관에서는 재난 상황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문을 닫게 했다. 각종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며, 우리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디지털 세계의 물살을 견뎌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경험하고, 미술관과 박물관의 존재 가치, 그리고 이들 기관이 선보였던 전시 형태, 재난 이후의 예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술의 장 안에서 ‘재난, 환경, 디지털, 기술’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담론들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고, 앞으로 소개할 세 권의 책을 통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폐허’ 속을 나아갈 원동력을 얻고자 하였다.



안진국, 『불타는 유토피아』, 갈무리, 2020


  처음으로 언급할 책은 안진국 미술비평가의 『불타는 유토피아』(2020)이다. 필자에게 ‘유토피아’는 기술주의가 만들어낸 이상향을 뜻하며 밝은 빛을 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활활 불타면서 잿더미를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첫 문장은 “여기는 질문으로 가득하다.”로 시작한다. 이 냉소적인 물음표는 우리가 책장을 덮을 때까지 이어진다. 현 상황에 대한 명쾌하고 정확한 대안을 찾는 책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필자는 질문을 던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이 시대가 지닌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는 디지털화를 거친 현대 미술의 ‘납작한(flat)’특징과 자동화와 기술화 속에서 ‘실패하지 않는 예술’이 만연해진 사태를 비판하며 기술의 은폐된 작동 방식을 들춰내고자 한다. 더불어, 팬데믹 상황이 디지털을 이용한 ‘비대면 예술 감상’이라는 패러다임을 발전시켰지만, 새로운 전시 문법과 저작권 전쟁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2부는 예술계가 SNS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상황이 오히려 미술관과 미술관 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미술관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다음으로, 3부는 ‘인류세’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와 재난을 대하는 미술을 소개한다. 여기서 작가가 예시로 언급한 작품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리투아니아 국가관 전시인 <태양과 바다(마리나)>이다. 이 작품은 세 명의 작가, 루자일 바치우케이트, 바이바 그레이니트, 리나 라플리테와 루시아 피트로이스티의 기획으로 탄생하였다. 20여 명의 배우가 인공으로 만들어진 해변에서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이지만 그 뒤로 울려 퍼지는 선율과 합창은 휴양지에서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생태계의 파멸을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2019 베니스 비엔날레 <태양과 바다(마리나)> 퍼포먼스 장면

Photo by Andrea Avezzu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마지막 4부는 디지털 사회의 ‘불면증’과 ‘빅데이터’, ‘아카이브’가 지닌 민낯을 파헤친다. 영원성을 갈망하는 ‘예술계 아카이브 열병’ 현상을 돌아보고 아카이브 전시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또한 필자는 모든 기록들이 기계어로 변환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디지털 언어를 해독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도래한다면 인간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기억과 역사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필자는 “거대한 테크놀로지의 쓰나미 속에서 ‘우는 일이 전부’이다.”라는 남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폐허를 애도하는 것뿐일까? 필자가 희망했듯이 “기술 자신을 위해, 기술과 함께하고 있는 인간을 위해”, “울 수 있는 기술”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일민미술관, 현실문화연구, 『디어 아마존-인류세에 관하여』, 2021



  이어지는 책에서 우리는 희미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디어 아마존-인류세에 관하여』(2021)는 일민미술관과 현실문화연구가 공동을 출간한 책으로, 2019년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전시, 《Dear Amazon : 인류세 2019》의 확장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과물은 전시를 기획하는 도중, 국내에서도 ‘인류세’와 관련된 서적을 필요로 한다는 판단에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인류세’는 대기화학자인 파울 크뤼천이 2000년에 본격적으로 언급한 지질학적 용어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각종 활동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지질시대를 뜻한다. 이 책은 국내외 유수 인류세 연구가, 기획자, 아티스트 등 13명의 글이 담겼고, 《Dear Amazon : 인류세 2019》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의 이미지들이 활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나는 해당 전시를 관람했었는데, 『디어 아마존-인류세에 관하여』을 통해, 기억을 더듬으며 전시와 담론을 재해석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맨 마지막을 장식한 최유미 저자의 「인류세를 빠져나오기」였다. 최유미는 페미니스트 이론가이자 과학사학자인 도나 해러웨이의 주장을 인용하며, ‘인류세 빠져나오기’를 시도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인류세라는 용어에 반대하고 있는데, ‘인류세’는 모든 것을 인간의 행위로 돌림으로써 파괴를 야기한 구체적인 행위를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재난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해러웨이는 ‘쑬루세(Chthulucene)’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이는 “거미의 촉수처럼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시대”를 뜻하며, “끊어진 연결을 다시 복원하고 피난처를 복구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인류세’를 논하기 위해 탄생한 책을 ‘인류세를 빠져나오기’라는 제목을 글로 마무리 짓는 일은 자칫하면 종말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류세’의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합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최유미, 「인류세를 빠져나오기」, 『디어 아마존-인류세에 관하여』, p.291

필자는 도나 해러웨이의 주장을 바탕으로 ‘인류세’라는 용어에 반기를 든다.


  마지막 책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접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큐레이터, 작품보존가, 연구자로 구성된 비영리 연구 단체인 미팅룸의 두 번째 저서,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2021)는 비대면 상황을 대하는 국내외 문화예술기관들의 모습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재난 이후 미술의 쟁점과 과제, 전망, 위협 그리고 한계를 논의한다.



미팅룸,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셰어 미』(2021)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디지털 플랫폼의 확장과 그 가능성에 대해 주목한다. 코로나와 급부상한 메타버스와 그 안에서 탄생한 새로운 전시 환경의 사례를 살펴보고 새롭게 목격된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본다. 2장의 주제는 ‘온라인 미술시장’이다. 코로나 19 이후 많은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이에 따라 온라인 미술시장이 급부상하게 된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OVR의 기술, NFT의 움직임과 한계, 가능성, 그리고 전망을 아우르는 미술시장의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다. 3장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여 온라인 미술교육을 진행해온 미술관의 노력을 살펴본다. 


  이어서 4장은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환경으로 가속화된 작품 보존과 학계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보존에 대한 과학 기술을 행함에 있어서 보존 윤리와 철학의 가치를 존중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은 디지털 아카이브와 아카이브를 위협할 수 있는 재난 요소와 사례를 나열하며, 현재 디지털 재난 방지 및 대처를 위한 심도 있는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며, 이에 대한 재구축과 전문인력 등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미술계의 아카이브 열병 이후, 많은 아날로그 자료들이 디지털화되었는데, 디지털 자료 또한 오류, 해킹과 같은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 얼마 전, 예기치 못한 순간에 외장하드의 고장을 맞이하고 눈물의 복구비를 지불해야했던 나로서는 마음 속 깊이 다가왔던 부분이었다.


  『불타는 유토피아』의 저자는 “지금 우리는 폐허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폐허’는 몰락과 새로운 시작을 품은 공간이다.” 폐허를 맞이한 우리는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디어 아마존』에서 볼 수 있었듯, 인류가 나아갈 방향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셰어 미』 속 사례처럼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류세’라는 ‘경고’는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폐허에서 목 놓아 울기 보다는, 폐허를 응시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윤란 rani7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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